시작하며…
개발자로 인생을 보내면서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 관심의 대부분은 기능성, 미래, 또는 나에게 밥벌이가 될 것인가의 등등에 집중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나 또한 그러하다. 하지만 가끔은 개발자의 관점에서 벗어난 시각으로 프로그래밍 언어의 과거나 배경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이번 기회에 한 번 정리해 보았다. 이 포스트에서 다룰 언어는 부동의 시장점유율 1위, 자바다.
자바의 등장
보통 하나의 프로그래밍 언어가 일정 이상의 인지도와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는 것, 소위 메이저급 언어가 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 시장은 생각보다 꽤나 보수적이라서 새로 나온 언어가 아무리 좋다고 한들 쉽게 시장에 파고들기 힘들다. 인지도를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중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을 꼽으라고 하면 바로 시간이 아닐까 한다. 어쨋든간에 시간은 필요한 법이니까. 그러나 여기에 예외인 언어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이 이 포스트의 주인공인 자바가 되시겠다.
JVM 이 발표된 것이 1994년, 자바는 1995년, JDK 는 1996년이다. SDK가 없이 개발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라는걸 생각하면 본격적인 시작은 JDK가 발표된 1996년으로 봐야한다. 그럼 자바는 발표 후 어느정도의 시간이 걸려서 인지도를 쌓았을까? 1년? 2년? 아니다. 자바는 시작하기도 전부터 이미 메이저급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SUN의 적극적인 푸쉬, 그리고 플랫폼 독립성이라는 막강한 강점을 안고 등장한 자바에 쏟아지는 기대는 유래가 없을 정도여서 당시 프로그래밍계의 이슈는 자바가 독차지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대로 등장하기도 전에 자바와 관련된 논문이 나오기 시작했고 넷스케이프나 MS등 대형 소프트웨어 회사들도 자바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이것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렇게 시작과 동시에 뜨거운 관심을 받는 자바의 인기에 기름을 붓는 사건이 터지게 된다.
타임지가 꼽은 1995년 올해의 상품에 자바가 한 자리를 차지한 것. 이것을 기점으로 자바의 인지도는 단숨에 비개발자도 아는 정도의 위치까지 올라가게 된다.
시장을 빠르게 점유했던 자바
시작과 동시에 최상급의 인지도를 확보하긴 하였으나 시장을 점유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 신생 언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점유율을 확보해나가기 시작하긴 했으나 C, C++ 의 벽은 굳건했다. 그러나 자바가 등장하고 불과 3년만에 자바진영에 핵폭탄급 신제품이 등장하게 되는데 바로 JSP 와 톰캣이다.
JSP의 등장 이후 자바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시장을 점유해나가게 되는데 불과 2년도 채 되지 않아 시장 점유율 1위에 등극하게 된다. 자바가 세상에 나온지 겨우 5년만에. 이렇게나 짧은 시간에 시장을 점유한 사례는 자바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2019년인 요즘 뜬다고 하는 언어들이 언제 나왔는지 생각해보면 자바같은 언어는 다시 나오기 힘들것이라 예상된다.
이렇게 빠르게 시장을 점유한 것이 자바 진영만의 힘이냐고 하면 그렇게는 또 말하기가 힘들다. 예나 지금이나 이 시장은 꽤 보수적이다. 기업은 검증되지 않은 새제품은 도입하기 꺼려한다. 도입하고자 하면 기나긴 설득의 시간을 거쳐야만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던 시기가 딱 한 번 있었다.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에 JSP 가 등장한 것이다. 물론 닷컴 열풍과 JSP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였기 때문에 JSP가 뜬게 타이밍 운빨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으나 이 시기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빠르게 시장을 잠식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SUN의 몰락
닷컴 열풍에 힘입어 자바는 시장을 차지했고 그 이후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로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자바의 점유율은 굳건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사실 꽤나 힘든 시절을 겪었다. 자바를 만드는 기업, 썬 마이크로시스템즈가 몰락한 것이다.
지금이야 그저 자바 만들었던 회사, 오라클에게 인수된 회사 정도로만 인식되는 과거의 기업이지만 90년대의 썬은 엄청난 회사였다.
여기에 들어가는 모든 시스템을 만들거나
이거를 렌더링 하거나 등등.(출처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en/1/13/Toy_Story.jpg)
거기에 자바의 대성공과 기존 서버 시장에서의 인지도, 인터넷 붐은 썬을 닷컴 열풍의 최전선에 서게 만들어주었다. 매출도 덩달아 증가하여 99년에 70억달러의 매출을 올리던 썬은 2000년에는 97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그야말로 브레이크 없이 성장하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장이 닷컴 열풍이 아니라 닷컴 버블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물론 이 시기는 대부분의 IT회사가 타격을 입었다. 그렇다곤 하나…
타 회사들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썬은 떡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렇게 모회사가 휘청거리니 자바라고 영향이 없을 수 없었다. 썬은 어려운 와중에서도 자바에 대한 지원을 끊지 않았으나 2006년을 기점으로 더 이상 자바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여력 마저 잃어버린다.
버전 | 발표 년도 | 비고 |
---|---|---|
1.5 | 2004년 | |
1.6 | 2006년 | |
1.7 | 2011년 | 오라클에게 인수된 후 첫 버전 |
1.8 | 2014년 |
1.6이후 1.7이 나오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 이 시기는 많은 프로그래밍 언어들이 빠른 속도로 발전을 거듭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 자바는 정체될 수 밖에 없었고 이 때 발전 시기를 놓친 여파는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오라클
2009년 오라클이 썬을 74억 달러에 인수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왜?’ 라는 의문을 품었다. 비슷한 금액을 제시했던 IBM 에게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 보였으나( 그러나 반독점법을 우려하여 IBM은 썬 인수전에서 철수하게 된다 ) 오라클에게는 그럴만한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그리고 10년이 흐른 지금, 오라클의 썬 인수는 꽤나 성공적이다. 오라클은 엔지니어드 시스템을 구축하며 썬 인수의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오라클이 손놓을거라 생각했던 MySQL 조차 수익을 안겨주고 있다. 그러나 자바는 그렇지 못하다.
썬은 소프트웨어를 미끼로 하드웨어를 판매하는 업체였다. 당연히 오픈소스에 관대할 수 밖에 없었던 매출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오라클은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업체다. 썬을 인수한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데이터베이스 판매로 먹고 사는 회사다. 애초에 오픈소스에 관대하기 힘든 회사인 것이다.
많은 사람이 알다시피 오라클은 결국 자바를 2019년부터 유료화로 전환하였다. 지난 10년간 자바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수익을 뽑아낼 가능성을 봤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버리지는 않았으니까. 아니면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일 수도 있고.
자바의 미래?
자바의 점유율은 조금씩 하락 중이다. 아마 과거와 같은 압도적인 위치를 다시 차지하는것은 무리일 것 같다. 그렇다고 자바가 몰락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자바로 작성되어 있는 시스템은 이미 너무나 많고, 발전도 계속해 나가고 있기 대문에 앞으로도 주류 언어의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몰락한다고 가정해도 최소한 예전 코볼 이상의 위치는 될 것이다. 그런고로 훗날에도 프로그래머의 좋은 밥벌이가 될 것이다. 아마 오랫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