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명색이 게임업계에서 일하고 있음에도 클라우드 게이밍에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것이 얼마나 거대한 파도가 될지 뻔히 알고 있음에도. 구글 스태디아는 이미 서비스를 시작하였고 MS의 xCloud 도 서비스를 조만간 시작할 시기인 지금, 한 번쯤은 클라우드 게이밍에 대해 생각해봐도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글을 적어본다. 이번 포스팅도 기술 관련 내용은 거의 없다. 딱히 영양가 있는 글은 아니고 그냥 뻘글이 되겠다.

네트워크 환경은 충분하다

지금까지의 게임들은 보통 네트워크 플레이를 할 때 대역폭이 아주 중요한 이슈는 아니었다. 대역폭보다는 적은 사이즈의 패킷을 얼마나 빨리, 그리고 자주 보낼 수 있느냐가 훨씬 중요한 이슈이며 유저의 조작으로부터 즉각적인 응답을 필요로 하는 게임일 수록 더더욱 중요하다.

흔히 핑(Ping)이라고 부르는 네트워크 딜레이가 일반적으로 100ms 이하이면 원활하게 게임을 플레이 할 수 있다고 평가하는데 이것은 초당 10번 이상의 통신을 성공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게임에서는 1초에 10메가를 전송하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0.1초 이내에 1킬로바이트를 전송 시킬 수 있느냐가 훨씬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대량의 영상데이터를 전송할 수 밖에 없는 클라우드 게이밍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시대는 발전하고 네트워크 장비도 발전했다. 0.1초만에 1킬로바이트를 전송시키는게 게임에서 더 중요하다고는 했지만, 이제는 0.1초만에 10메가를 전송시킬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아주 심플하게 생각하자면, 기존에 전송되던 게임 패킷 데이터에 영상 데이터를 붙여 10메가 짜리 패킷을 전송하면 그만이다. 물론 실제론 이렇게 심플하게 되진 않겠지만, 적어도 현재 네트워크 환경은 클라우드 게이밍을 서포트하기에 이미 충분한 수준으로 갖추어졌다. 더 고무적인 것은 무선환경도 5G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면 큰 폭의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webRTC

클라우드 게이밍 업체들이 명확하게 기술 스펙을 공개한 적은 없으나 구글은 스태디아에 사용되는 기술에 대해 공개했는데 크게 아래 3가지를 들 수 있다.

  • webRTC
  • QUIC
  • BBR

QUIC는 그냥 HTTP 3 이고 BBR은 QUIC의 혼잡제어 알고리즘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를 끌었던 것은 webRTC 인데, 이것은 웹브라우저 간의 실시간 양방향 통신을 위한 기술이다. 신기술은 아니고 이미 W3C 표준이 있을 정도로 널리 사용 중인 기술이다.

‘브라우저 간의 실시간 양방향 통신’ 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기술은 서버를 거치지 않고 브라우저(=유저) 간에 P2P 통신을 가능하게 해준다. 클라우드 게이밍에 적용한다면 중앙서버의 연산 부담을 각 피어별로 분산 시킬 수 있다는 걸 뜻한다. 실제로 가능한지는 모르겠으나 지금도 크롬 익스텐션으로 webRTC를 활용범위를 확장시키는걸 보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분산처리가 가능할 경우 어떤 이득이 있을지는 당장은 떠오르지 않는다. 유저에겐 별 이득이 없을 것 같고 컴퓨팅 파워를 아낄 수 있는 공급자에겐 뭔가 득이 있을것 같긴 하지만 분산 처리 자체가 기술적 허들이 높으므로 뭔가 쉽게 득을 보기는 힘들 것 같다.

클라우드 게이밍 플랫폼을 가질 수 있는 기업

사실 클라우드 게이밍 자체는 몇 년 전부터 서비스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소니의 PS NOW가 있으며 그 외에도 몇몇 서비스가 등장했었으나 성공했다고 볼 수 서비스는 없다. 여전히 이 시장은 블루오션인 셈이다.

그러나 블루오션이라고 해도 이 시장에 도전할 수 있는 기업은 한정적이다. 넷플릭스처럼 글로벌 시장의 지배자가 되고자 한다면 더더욱 한정적이다. 필요한 컴퓨팅 파워가 기존의 서비스와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전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데이터 센터를 기본적으로 보유해야 한다. 어쨋든간에 네트워크의 속도는 빛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에 단일 데이터 센터로 전세계 서비스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핑에 민감한 게임을 서비스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중간한 데이터 센터 숫자로는 안된다.

이미 여기서 클라우드 게이밍 시장에 도전할 수 있는 기업은 정해진거나 다름없다. 전세계 곳곳에 데이터 센터를 구축, 운영 가능한 업체는 극소수다.

서버 자체의 컴퓨팅 파워도 기존 서버보다 훨씬 많이 요구하게 되는데, 게임을 그래픽 렌더링을 포함하여 그냥 서버에서 돌리는 것이다 보니 하나의 서버가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다른 서버에 비해 대폭 줄어든다. 서버 비용이 미친듯이 증가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천문학적이 될 서버 및 데이터센터 구축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기업이 몇이나 될까? MS는 xCloud를 소개하며 콘솔시장의 경쟁자인 소니와 닌텐도를 클라우드 게임시장에서는 경쟁자로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선언했다. 소니 정도의 규모로는 이 시장에서 경쟁하기 힘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부터 클라우드 게이밍 플랫폼에 도전할 업체로는 소위 FAANG + MS 정도가 꼽혔으며 실제로 넷플릭스를 제외한 나머지 업체들은 모두 클라우드 게이밍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물론 이들 뿐만 아니라 몇몇 업체들은 자체적, 혹은 타기업과 연계하여 자체적으로 클라우드 플랫폼을 구축할 가능성도 높다. 예를 들어 NC처럼 로컬지역에서 시장지배력을 가진 업체라면 그들의 수익을 굳이 나누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게임 제작 환경의 변화?

클라우드 시장 플랫포머들의 목표는 결국 넷플릭스처럼 클라우드 게임 시장의 지배자가 되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넷플릭스가 시장을 지배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해왔는지 살펴보면 약간이나마 이들의 행보를 추측할 수 있다.

넷플릭스는 매출의 대부분을 컨텐츠 제작에 쏟아부어 영업이익률이 낮은 걸로 유명하다. 이렇게 미친듯한 컨텐츠 투자는 효과가 있어서, 인기 방송 영상 컨텐츠들 중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컨텐츠의 비중은 대단히 높다. 이 컨텐츠들을 실제로 제작하는건 넷플릭스로부터 자금을 받은 제작사들이다.

그렇다면 클라우드 게임 제작도 비슷한 양상으로 가지 않을까? 물론 지금도 게임업계는 퍼블리셔가 투자하고 실제 개발은 소형 개발사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소형 개발사는 게임 개발을 위한 자금을 조달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콘솔이든 모바일이든 투자를 받는 수 밖에 없다. 투자를 받아 컨텐츠를 개발하는 것은 방송 컨텐츠나 게임이나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투자의 규모가 차원이 다르다는 것에 있다.

소형 개발사는 게임 개발비 정도만 투자를 받고(이나마도 받을 수 있다면 다행이다) 런칭 이후 파이를 투자자에게 나누어주어야만 한다. 이것도 성공했을 경우의 이야기고 실패할 경우에는 그대로 파산이다. 엄청난 리스크를 지고 개발하는 것이다.

넷플릭스 투자 컨텐츠는 상대적으로 이 리스크에 대해 자유롭다. 투자 금액 자체가 크기 때문이다. 거기에 제작에 필요하다면 추가 투자를 얻는 것도 상대적으로 훨씬 쉽다. 최근 몇년간 드라마 같은 방손 컨텐츠 제작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 것은 넷플릭스의 미친듯한 투자 때문이다. 제작사는 돈에 대한 리스크가 줄어드니 제작에 더 집중할 수 있고 창의적인 도전도 가능해졌다. 그러다보니 양질의 컨텐츠가 자연스럽게 쏟아져나온다.

클라우드 게임 플랫포머가 넷플릭스를 꿈꾼다면, 게임 제작도 이렇게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너무 큰 기대일까? 클라우드 게임 시장이 넷플릭스 처럼 월정액 모델로 정착한다면 플랫포머들은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양질의 컨텐츠를 요구하고 거기에 투자할 것이다. 여기에서 양질의 컨텐츠라는 것은 다양성도 포함되기 때문에 개발사에게 무조건 금액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게임만을 강요하지도 않게 된다.

게임 제작사들은 (투자만 받을 수 있다면) 자금 리스크에서 자유로워지고 이는 창의적인 게임 제작을 시도할 가능성을 높여준다. 이런 시도를 상대적으로 쉽게할 수 있는 소형 제작사가 혜택을 볼 것이고, 지금까지 게임 시장을 사실상 주도해온 대형 퍼블리셔들은 현재보다 입지가 좁아질 가능성이 높다. 대형 방송국의 입지가 예전만 못한 것 처럼 대형 퍼블리셔들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희망적으로 본다면 클라우드 게이밍은 게임 업계에 정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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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ooasul

2020-03-1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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